가정과 생태환경

[주님 보시니 좋았다] (4) 미세먼지로부터 ‘우리’의 공기를 지킬 방법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19-07-18 (목) 16:40
ㆍ조회: 28      
어떻게 소비하냐에 따라 오염 결정
욕망 줄이고 ‘즐거운 불편’ 노력 필요





미세먼지로 뒤덮인 도시 전경.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소비는 필연적으로 오염을 만든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노출은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찍 사망하게 됩니다.”(「찬미받으소서」 20항)


‘미세먼지 테마주 상한가 행진’ 이레에 걸친 초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던 지난 3월초, 한 경제지에서 읽은 기사 한 줄이다. 올해 공기청정기 시장이 3년 전보다 세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 전망하며, 미세먼지 관련 산업 주식을 테마주가 아닌 장기적 투자안목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침 그 즈음, 환경부도 대형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보겠노라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환경부 장관은 이 논란을 두고 비상상황에서 무엇이라도 해 보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희화할 일이냐 되물었다. 맞다. 환경부 장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자동차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했고,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돌려 왔다. 마스크를 일회용품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나 경유차 저감을 대응책의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공기청정기를 사겠다는 것이 왜 희화할 일인가.



녹색연합 미세먼지 캠페인 포스터.

오히려 슬픈 일 아닌가. 미세먼지를 대하는 정부의 철학이 무엇인지 마침내 우리 모두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인공강우나 대형 공기청정기 설치가 아무리 시범사업단계라 할지라도, 정책은 국가가 시민들과 사회에 자신들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정부가 가장 큰 공기청정기와 가장 많은 수의 공기청정기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되겠다는 사인은, 더 크고 좋은 상품으로 미세먼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지점에서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평등하다’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명제를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게 됐다. 빈곤도 위계적이고 스모그도 위계적이다. 실제 공기청정기나 마스크의 효과가 어떻든, 구매력이 없고 정부의 대형 공기청정기 영향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더 더러운’ 공기 속에 있다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구매력 안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성능의 최신의 공기청정기를 사무실에, 집안에 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처지에 놓였다. 소비는 소비의 영향권 밖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가?

철학 없는 정책이 보내는 사인이 이런 것이다.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을 더 소비하게 한다. 정부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깨끗한 공기를 위해 무엇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모든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오염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미 알고 있듯 공기청정기 시장이 아무리 커져도 ‘우리 집’ 밖의 공기가 덩달아 깨끗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염을 줄이는 일은 소비의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이 돼야 한다. 어떤 욕망을 줄이고 불편함을 감수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이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우리’를 확장하고 오염과 차별 위에 세워진 세계를 균열 나게 할 것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부정의의 사회에서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녹색연합 배보람 전환사회팀장



가톨릭신문

발행일2019-04-21 [제3141호, 23면]














   
댓글달기   0
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