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생태환경

덜 쓸고 덜 버리기 (법정스님)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21-04-30 (금) 14:32
ㆍ조회: 10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라는 옛말이 있다. 
요즘 쓰레기 종량제를 지켜보면서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이 만들어 낸 쓰레기 때문에 사람 자신이 치여 죽을 판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해답은 쓰레기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태계적인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 인간의 행위가 곧 우리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행위는 결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런 현상이 인과 법칙이요, 우주의 조화다. 

야생동물은 자신들이 몸담고 사는 둥지나 환경을 결코 더럽히지 않는다. 
문명하고 개화했다는 사람들만이 자기네의 생활환경을 허물고 더럽힌다. 
일찍이 농경 사회에서는 쓰레기란 것이 없었다. 논밭에서 나온것은 다시 논밭으로 되돌려 비료의 기능을 했다. 
산업 사회의 화학 제품과 공업 제품이 땅과 지하수를 더럽히고 우리 삶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언젠가 광릉 수목원에 갔더니, 우리가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의 썩는 기간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었다. 
양철 깡통이 다 삭아 없어지려면 1백년이 걸리고, 알루미늄 캔은 5백년, 플라스틱과 유리는 영구적이고, 비닐은 반영구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허옇게 굴러다니는 스티로폼은 1천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끔직한 일이다. 

이 땅이 누구의 땅인가?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 그 이전부터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땅이다. 
또한 우리 후손들이 오래 오래 대를 이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이 땅이 우리 시대에 와서 말할 수 없이 더렵혀지고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들 삶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우리 선인들은 밥알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끔찍이 여기며 음덕을 쌓았는데, 그 후손인 우리들은 과소비로 인해 음덕은 고사하고 복 감할 짓만 되풀이 하고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과소비와 포식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라 흔히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혼을 지닌 인간이 한낱 물거의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다. 
소비자란 인간을 얼마나 모독한 말인가. 사람이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존재에 불과하다니, 그러면서도 소비자가 어찌 왕일 수 있단 말인가.

현재와 같은 대량 소비 풍조는 미국형 산업 사회를 성장 모델로 삼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자원과 기술은 풍부하지만 정신문화와 역사적인 전통이 깊지 않은 그들을 본받다 보니, 오늘과 같은 쓰레기를 야산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작은것과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고 고맙다. 
귀하게 여길줄 알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아름답게 여길줄 알며, 또한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데서 맑은 기쁨이 솟는다. 

물건을 새로 사들이고 한동안 지니고 쓰다가 시들해지면 내다 버리는 이런 순환에 갇혀 있는 한, 맑고 투명한 마음의 평온은 결코 얻을 수 없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꼭 있어야 하고 없어도 좋은지 크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먼저 자신부터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도 모르고 소유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욕망의 좁은 공간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소비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그럴듯한 광고에 속지 말아야 한다. 
광고는 단순히 상품의 선전이 아니라 우리들의 욕구를 충동질 한다. 

산업 사회의 생산자는 소지자가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낸다. 
소비자는 결국 생산자에 의해서 조작당하고 유도된다. 
이때 소지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광고다. 광고의 그럴듯한 단어들에 현혹되지 말라. 
그 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어떤 알맹이와 함정이 들어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의 처지와 분수에 눈을 돌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한때의 기분이나 충동에 휘말리게 되면 우리들 자신이 마침내 쓰레기가 되고 만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들 자신을 소유해 버린다. 그러니 필요하 따라 살아야지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다. 
없어도 좋을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홀가분해져 있느냐에 따라 행복의 문이 열린다.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고 하지 말라.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익히 체험하고 있듯이, 둘을 갖게 되면 하나의 소중함마저 잃게 된다. 
가수요는 허욕에서 싹튼다. 모자랄까 봐 미리 걱정하는 그 마음이 바로 모자람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집 안에 사들인 물건들을 한번 둘러보라. 
쓰지도 않고 한쪽 구석에 놓아둔 물건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들이 쓰고 있는 모든 물건은 이 지구상에 한정된 자원의 일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자원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후손에게 물려줄 인류 공유의 자원이다. 
우리가 보다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될 수 있는 한 생활용품을 적게 사용하면서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덜 쓰고 덜 버리는 이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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