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3) 더불어 사는 우리
ㆍ작성자 가정사목부
ㆍ작성일 2020-07-02 (목) 10:08
ㆍ분 류 생명과 성
ㆍ조회: 17      
(3) 더불어 사는 우리

개인주의 사회에 공동선 가치 지켜야


인간 사회는 ‘인격들의 친교’(communio personarum)를 번역한 말이다. 우리는 친교를 보통 ‘소통’(communication)의 의미 정도로 이해한다. 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나누거나 가진 것을 교환하는 의미로 생각한다. 그러나 친교는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인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알맞은 협력자가 되도록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한 존재로서 창조됐다. 인격들의 친교는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되는 것, 나 자신이 바로 상대를 위한 존재며 선물이 되는 관계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을 주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나 자신을 선사하는 친교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 사랑을 통해 생겨났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서 생겨난 나의 유전자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반씩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관계 안에서 태어났고 내 존재 자체가 부모 사랑의 열매다.

남녀의 결합인 혼인은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기초가 된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기본 세포이기에 한 사회에서 개인은 가정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가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근본적으로 알게 된다. 나라는 존재를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제들과 관계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한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정받고 환영받는다. 만일 자녀가 한 가정에서 받아들여지고 자녀로 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그 자체로 불행한 일이다. 가정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의 유일한 장소다. 인간이 주체적이고 존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인간의 존엄성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인간은 가족 관계를 바탕으로 더 넓은 관계인 사회 공동체를 향해 나아간다. 인간은 생존과 자신의 발전을 위해선 공동체의 지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때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것이 공동선(共同善)이다. 공동선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생명이다. 생명은 근본적인 선(善)이며 다른 모든 것을 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과 가치는 각자가 주장한다고 보장받을 수 있지 않다. 내 생명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가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인정하고 지켜줘야 한다. 그래서 어느 사회나 생명권을 가장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며 생명을 해치는 범죄를 엄하게 처벌한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선택의 사회적 측면을 점점 잊어가고 있다. 특히 혼인과 출산, 가정을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한다. 출산이 사회에 대한 부부의 소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는 사라지고 모래알 같은 개인만이 존재하게 된다. 각자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다 보면 결국 타협이 필요하게 되고 합의 혹은 타협을 중요하게 여기면 공동선이나 절대적인 진리와 같은 기준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인간 생명의 가치마저도 협상할 수 있고 흥정 가능한 것이 돼 버린다. 우리는 이미 낙태죄 위헌 판결로 인간 생명도 다수결로 결정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06.21 발행 [1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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