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논란으로 떠들썩한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57년이 지났습니다. 잔나 베레타 몰라(Gianna Beretta Molla, 1922~1962).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이탈리아의 소아과 의사였습니다.

아내는 평범했습니다. 매일 가족과 함께 기쁨과 고통을 나눴고,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문제에 부닥쳐도 미소를 잃지 않았지요. 잔나는 유달리 아이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늘 다정한 태도, 깊은 배려와 애정 어린 자세로 아이들을 대했습니다.

1961년 9월 잔나가 넷째 아이를 임신한 지 두 달째, 자궁에 종양이 생겼습니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고 임신을 유지하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잔인한 딜레마였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아기를 구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내의 청을 듣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기도에 매달렸고, 아내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아기를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네 명의 자녀를 엄마 없이 남겨두는 것인데….”

아내가 확신한 것은 태중에 있는 아기도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극적인 선택이었고, 무서운 희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 사랑을 선택한 용기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고통 없이 사랑할 수 없고, 사랑 없이 아플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까?”

1962년 4월 28일, 산부인과 병실에 누운 아내는 갓 태어난 아기를 들어 올렸습니다. 슬프고도 고통에 찬 미소였습니다. 아내는 아기 얼굴에 입을 맞췄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삶을 내려놓은 한 여성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무엇을 보았는지 아실런지요! 우리가 하늘의 모든 축복을 받아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에, 건강하고 은총이 가득한 예쁜 우리 아이들과 너무도 잘 지냈기 때문에, 하느님은 저를 이 자리에 다시 보내어 고통을 받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엄청난 고통 없이는 주님 앞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내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2004년 5월 1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아내를 성녀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회가 한 가정의 어머니를 성녀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가롤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님이 제 아내를 이렇게 소개하시더군요. “생명의 존엄과 신비를 손상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은 놀라운 여성이라고요.”

생명을 받아들이는 데 따르는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과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성녀 잔나 베레타 몰라의 남편, 피에트로 몰라

※이 글은 이탈리아 성녀 잔나 베레타 몰라의 삶을 기록한 「성녀 잔나 베레타 몰라」(성바오로)를 참고해 남편의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평화신문 2019.03.31 발행 [15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