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면서 어지간한 충격에는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내 표정이 며칠째 어두웠습니다. 그 누구도 아내를 어둡게 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아내는 대인관계에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만 자식들과의 관계가 조금 서먹해지자 견디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성장한 아이들이 만나는 이성 친구를 보는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는 근심 걱정이 먼저 앞서곤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도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다듬어온 생각과 이제 시작하는 생각은 자주 쉽게 충돌을 합니다.

　이제까지 아내의 자녀교육 방법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소리치거나 야단치지 않고 일단 그냥 두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때리거나 매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한 때 아이를 데리고 앉아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주었습니다.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 길게 설명을 하는데 설명의 끝은 아이가 잘못했다며 스스로 울 때까지였습니다. 그렇게 키워온 아이들이 이젠 머리가 커서 엄마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자 스스로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의지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지만 자기 몸도, 자식도 마음대로 되지 않나 봅니다.

　예전에 '나' 한사람만 생각하고 살아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던 저기압을 읽어내면서 나름 고기압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버려두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기기도 해보고, 애교도 피워 보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365일 좋기만 하랴! 필요할 때는 그분께서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저기압도 허락하시리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온전히 맡겨드리는 아내처럼 저도 그분께 아내의 고통을 맡겨드렸습니다. 

　고통에서 제일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은 내 고통을 그분께 맡겨드리고 이웃을 위해 구체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믿고 있기에 둘이서 함께 다른 형제를 위해 육체노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신다거나 맛있는 식사라도 할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둘이서 함께 한나절 땀을 흘렸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진지하게 속내를 털어 놓고 서로 위로하게 되었습니다.

　자식들, 이제 제 갈 길을 찾아갈 테고 자식이 무슨 소용이랴 우리 둘이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살아가자는 저의 제안에 아내는 모처럼 환하게 웃었고 꼬-옥 안아주자 행복해했습니다.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며 나의 판단들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듯 기쁘고 으쓱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들에게 걱정이 아닌 사랑을 퍼주고 있었습니다.

손세공·배금자 부부(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전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