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체질이 아닌 저는 자주 대장질환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식습관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맘껏 먹고 나서 항상 후회를 합니다.

　소식(小食)에다 천천히 식사를 하는 좋은 식습관을 갖고 있는 아내는 제 건강을 위해 항상 지적을 해줍니다. 밤에 잠들기 전에 속이 편하지 않다고 소화제를 찾으면 왜 매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느냐고 안타까워합니다. 그 조금 더 먹은 것 때문이라며 제발 적당히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며 약을 찾아다 줍니다. 아침식사를 할 때도 무슨 전쟁을 치르러 가냐며 제발 천천히 먹으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런데 식사를 할 때 잔소리를 하면 화가 납니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잔소리는 제발 그만 두라고 언성을 높입니다. 내가 즐기며 사는 것이 뭐가 있냐고, 유일하게 갖고 있는 먹는 즐거움마저 내려 놓으라면 도무지 무슨 재미로 살아가야 하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러면 아내는 아무 소리 안 하고 내버려 둡니다. 

　채식을 즐기는 아내와는 반대로 하루라도 고기를 안 먹으면 허전해 냉동실엔 삼겹살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 없을 땐 주부로서 자격미달이라고 다그칩니다. 

　제 식습관을 꼭 닮은 막둥이 아들의 건강이 나빠져 아내와 함께 아들을 데리고 병원엘 가야 했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 검사를 했고, 대장에 문제가 있어 오랫 동안 치료를 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고 나오면서 아내는 낙담했습니다. 맥없이 터덜터덜 걷다가 아내는 불쑥 한마디 뱉었습니다. 

　"나쁜 것은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아빠를 그대로 닮아 고생하게 생겼네!"

　움찔했지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 옳은 소리였지만 지금 화를 내면 우리 가족 사이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서 서둘러 외출하실 거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습니다. 

　무조건 일단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차피 아들은 대장에 문제가 생겼고 열심히 치료하면 될 일을 굳이 족보까지 들춰내야 한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 앞에서 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말을 한 아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아들에게 질병을 허락하셔서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시나 싶었지만 일단 한순간을 잘 참아내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위기를 잘 넘겼다 생각하니 그거 하나는 잘했다 싶었습니다. 번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 중 누가 아프면 굳이 시키지 않아도 남은 가족들은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매달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한마음이 되어 함께 기도를 하게 만들어 주셨다. 부부가 일치를 깨뜨리지 않고 살아가는 훈련을 하도록 아들에게 질병을 허락하셨나 보다.'

　그렇다면 아들이 엄마, 아빠를 위한 봉헌제물이 됐구나 싶어 아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막둥이 아들에게 우리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워놓으셨을 거란 믿음도 생겼습니다.